1. 성서와 해석
텍스트는 그 내용이 청자 혹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순간 해석된다. 해석은 저자와 독자의 서로다른 시공간의 간극을 연결하는 개념이다. 저자가 기록으로 남긴 내용은 독자의 상황과 시대 속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때로 독자들의 가치관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즉,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해서 해석되는 텍스트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텍스트이며, 해석되지 못하는 텍스트는 죽은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 공동체 속에서 수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해석되어 왔던 성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텍스트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텍스트를 해석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위 그림은 해석 과정을 도식화한 것이다. 해석 과정에 있어 중요한 3가지의 요소는 저자, 텍스트, 그리고 독자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부호화된 언어(code)를 사용하여 텍스트에 표현해 낸다. 당연하게도 이 부호화된 표현 방식은 저자의 사고방식과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세계의 내용과 틀을 담고 있는 텍스트는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게 되고 외딴 장소와 시간 속에 있는 독자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독자는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할까? 저자가 자신이 속한 세계의 틀 속에서 저술하였듯이, 독자 역시 일차적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의 틀 안에서 텍스트를 이해하게 된다. 독자가 자신의 세계속에서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해석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텍스트를 바라보면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가 속한 세계관과 가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독자의 위치에 충실한 해석 방식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매우 보편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 역시 성서의 메시지를 우리의 시대에 맞게 “현재화"하여 해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 중심의 해석 방식은 자칫 본래 텍스트의 메시지 자체를 자의적으로 받아들여 왜곡시킬 수 있다. 올바른 해석이란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상황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인문주의와 근대화 시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시작한 근대적인 역사학의 도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역사가”(historians)라 불릴만한 이들이 존재했지만 고대 역사가들의 관심사는 과거 역사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facts)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메시지와 교훈(instructions)을 전달하는 데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성서의 해석 역사에서도 바로 이런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근대 이전 성서 해석은 독자의 이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근대 이후의 성서 해석은 보다 비평적인 관점에서 본래 텍스트를 생산해 냈던 저자와 그 세계에 관심을 두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스케치해 보면서 오경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성서에 나타난 성서 해석의 흔적
성서 본문의 해석에 대한 최초의 흔적은 바로 성서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구약성서의 책들은 오랜 시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대와 가치관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책들 사이에는 역동적인 해석의 과정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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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한 해석 요구와 율법 확장
1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2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3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9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0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1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받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규례가 되게 할지니라
(민수기 27:1-10)
먼저 위의 성경 구절을 함께 읽어보자. 위 이야기는 후사를 남겨 놓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의 기업을 잇는 문제로 인해 그의 딸들이 모세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장면이다. 구약에는 내세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가 남긴 유무형의 기업을 이어가는 “장자”(the first born)를 통해 그의 삶이 지속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위 본문으로 보건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법은 딸들이 그 기업을 이어갈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법을 확장 내지 재해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께 이 문제를 의뢰하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법에 대한 가르침을 주심으로 법, 그 자체를 확장시키고 있다. 즉, 여기서 법의 개념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절대법이라기 보다 상황에 따라 확장이 가능한 상황법이 된다. 즉, 해석을 통해 새로운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법이 새롭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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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양을 먹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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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왕의 죽음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왕하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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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록에서는 요시야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대하 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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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대하의 기록에서 요시야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담고 있다. 요시야가 죽은 이유는 느고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은 악한 왕의 모습으로 요시야 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요시야 왕은 마치 아합과 같이 변장을 하다가 활을 맞고, 또한 사울처럼 부하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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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기 이후 “죄”에 대한 생각의 변화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에스겔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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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기 정황에서 조상들의 죄가 유전된다는 이전의 개념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포로기 이후, 회복의 시대의 성서 전통은 현재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앙적인 방향성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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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과 해석
느헤미야 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וַיִּקְרְאוּ בַסֵּפֶר בְּתֹורַת הָאֱלֹהִים מְפֹרָשׁ וְשֹׂום שֶׂכֶל וַיָּבִינוּ בַּמִּקְרָ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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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느헤미야의 율법책 낭독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라 “해석”의 과정을 동반하고 있다. 즉, 당대의 사람들에게 율법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근대 이전의 성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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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의 신앙 공동체 해석의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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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근본적으로 암호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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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독자가 살던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포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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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어떤 모순이나 오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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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전체는 하나님이 주신 책이다
1) 유대교의 성서해석
미드라쉬적 성서해석
미드라쉬(מדרש) < 다라쉬(דרש)
대하13:22; 24:27 (주석책/경책)
포로기 이전 דרש: 찾아, 구하다
포로기 이후 דרש: 성서를 연구하다
성서 구절의 인용, 암시, 유추 알레고리적 영적 풀이, 윤리적인 의미 풀이 성서를 다시 쓰기
중세시대의 페샤트(פשט)
다분히 자의적일 수 있는 문자적인 해석방식을 보완하는 문법적, 언어적 해석 방식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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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에 대한 탈무드의 해석
1절 ויהי אחר הדברים (그 일 후에)
“그 일들 후에”라는 시간은 하나님과 사탄이 아브라함이 정말 자식을 바칠 만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Sanhedrin 8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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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은 ויהי אחר הדברים (그 일 후에)로 시작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시험”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 일 후에”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고대의 해석가들은 성서를 암호 본문이라고 해석했으며, 성서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아 내려고 애썼다. 탈무드의 한 해석은(Sanhedrin 89b) “그 일들 후에”라는 시간은 하나님과 사탄이 아브라함이 정말 자식을 바칠 만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라고 적고 있다. 즉, 자식을 바치라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의인을 향한 시험이라는 모티프를 전달하고 있는 욥기의 이야기를 통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해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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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죽음에 관한 요세푸스의 기록
이스라엘의 왕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최선을 다해 용감하게 싸웠다(고대사 VI,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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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푸스가 살았던 때는 유대 반란이 있었을 때이다. 그는 성서 해석을 통해 일종의 영웅주의를 부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대의 역사가 개념은 현대의 역사가 개념과 달리 사실관계를 나타내는 것 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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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3의 끊어 읽기 (테아밈)
וְנֵר אֱלֹהִים טֶרֶם יִכְבֶּה וּשְׁמוּאֵל שֹׁכֵב בְּהֵיכַל יְהוָה אֲשֶׁר־שָׁם אֲרֹון אֱלֹהִים׃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기 전이었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웠다.
וְנֵר אֱלֹהִים טֶרֶם יִכְבֶּה וּשְׁמוּאֵל שֹׁכֵב
בְּהֵיכַל יְהוָה אֲשֶׁר־שָׁם אֲרֹון אֱלֹהִים׃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기 전이었고 사무엘은 누웠다. [한편] 여호와의 전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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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라 히브리어 성서 본문 전통은 나름대로의 부호 체계를 통해 성서 구절을 어떻게 끊어 읽고 이어 읽어야 하는 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 역시 일종의 해석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 기독교의 성서해석
알레고리적 해석: 헬라적 해석방식. 추상적/영적 해석. (예. 에베소서 6:11-17 믿음의 전신갑주)
모형론적 해석: 구약의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사건들의 모형이자 예표로 해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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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의 알레고리 해석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것이요 (레19:23)
이 경작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가 [파괴적인] 죄, 즉 마음의 잡초를 제거해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잡초들은 참된 믿음의 싹이 성장에 강해질 때까지 열매와 함께 자라난다 (스트로마테이스 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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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적 해석은 “영적인” 해석이다. 이는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거나 도리어 배치될 수 있는 성서 구절들을 영적으로 고양화시켜 해석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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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에 대한 어거스틴의 모형론적 해석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실한 순종을(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증명하고 알리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하는 시험에 직면한다 [예수를 이삭과] 비교하면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다 .. " [롬 8:32; 이때 “아끼다’’라는 단어는 창세기 22:12에서 전사가 사용하는 말과 동일하다]. 같은 이유로 이삭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 같이 희생이 드려지는 장소까지 제사용 나무를 운반했다 결국 이삭은 죽지 않았다 그의 아비는 그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면 누가 대신 ' 희생 제물로 드려졌을까? 누구의 예언적 피에 의해 희생이 드려졌을까? 아브라함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의 뿔(머리)은 가시나무 덤불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리스도 이외에 누구를 "그” 라고 가리킬 수 있을까? 예수는 희생으로 드려지기 전 가시 면류관을 쓰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도성』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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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론적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가 “원형”이고, 구약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이라는 해석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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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독교의 영적 해석의 4대 기준
Littera gesta docet,
문자적 의미는 하나님과 우리 조상들이 행적을 가르친다.
Quid credas allegoria,
알레고리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찾게 한다.
Moralis quid agas,
도덕적 의미는 매일 삶의 지침을 제공한다.
Quo tendas anagogia.
영적 의미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위 기준을 근거로하여 출애굽 이야기를 해석해 본다면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했음을 가르쳐 주고, 알레고리적으로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을 의미하며, 도덕적으로는 죄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영원한 영광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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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통해 본 성서 해석의 증거 (기독교의 유대교의 상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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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대 이후의 성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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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인쇄술
지금까지 살펴 보았듯이 근대 이전의 성서 해석 방식은 성서가 무오한 것이고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여, 성서에 기록된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에 의미 있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영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이끌어 내는 작업이었다. 물론, 혹자는 이것이 현대의 독자 비평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 비평이 성서를 읽는 모든 개개인이 수행하는 “아래로부터의 해석”이라고 한다면, 근대 이전의 성서 해석은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해석”이라는 데에 큰 차이가 있다.
사실 근대 이전까지 성서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이들은 기독교의 성직자와 회당의 랍비 들과 같은 당대 종교 엘리트 층들이었다. 일단, 기독교 신자든 유대교 신자든 라틴어 성서나 히브리어 성서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으며, 어느 정도의 문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할지라도 책이 귀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성서를 개인적으로 소장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를 전환시켰던 전환점들이16세기를 전후로 연달아 발생하기 시작했다. 먼저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이다. 중세 시대를 지배했던 교황과 교회의 권력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일어난 인문주의가 발흥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인문주의자들은 교권에 의해 무시되었던 옛 철학과 문학, 그리고 역사서들과 같은 고전들을 다시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문헌의 내용을 신학과 조화시키려고 했던 중세 스콜라 철학의 방법론에서 벗어나 각 고전들을 그 자체로 경험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사상적 조류는 성서 역시 다른 고전문헌들과 차별되는 책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비평학적 입장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분기점은 마틴 루터에 의해 1517년 시작된 종교개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서 텍스트의 독자는 전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평신도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들려주는 “위로부터의 성서 해석”을 수동적으로 들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면죄부 판매와 같은 폐해가 나타나게 되었고, 루터는 이러한 교권에 반발하여 이신칭의 신학을 주창하였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틴 루터의 가장 큰 공헌은 “오직 말씀으로만” (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실시한 “성서 번역”이었다. 마틴 루터의 이 성서 번역은 히브리어/그리스어로 쓰여진 성서 원문을 번역한 최초의 완역본이라 여겨지고 있다.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함으로(1522년) 누구나 성서 본문을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가능케 했던 기술적인 혁명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구텐베르크가 1439년 발명한 활자 인쇄술 덕분이었다. 성서를 필사하여 책을 만들 경우 1년의 시간이 걸리는데에 비해, 활자 인쇄술로 인해 1년에 200권의 성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짐으로 책의 대량 인쇄의 시초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고전 문헌들이 활판 인쇄를 통해 널리 보급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큰 영향을 주었고,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역시 이 활판 인쇄를 통해 무려 30만부 이상이 만들어져 독일과 전 유럽에 퍼져 종교개혁을 더욱 가속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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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성서학의 시작
근대의 성서 비평 방법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시대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시대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부터이다. 이 계몽주의의 배경에는 중세 말 유럽에서 시작되었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당시 데카르트, 베이컨과 같은 철학자들과 뉴튼 등과 같은 과학자들로부터 시작된 이성주의와 과학 혁명 등이 있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중이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는 프랑스 혁명 등도 이 계몽주의를 열었던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는 중세시대의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이성과 과학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뀌게 된 인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때 유대 철학자였던 바룩 스피노자(Baruch Spinoza)가 성서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비평적인” 성서 해석 방식을 주장한다. 1632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스피노자는 어려서부터 언어적으로 특출난 재능을 발휘했고 금새 히브리성서와 유대 문헌들을 자유자재로 읽고 번역하는 수준이 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1656년 유대 공동체에서 축출된다. 아무튼 그는 종교를 초월하여 기독교인들과도 자유롭게 어울리게 된다. 그는 1670년 익명으로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신학-정치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게 된다. 이 책에서 그는 제도화된 종교를 비판하면서, 신학과 철학(이성/과학)이 분리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특히 제도화된 종교가 특정한 성서 해석을 수호하기에 급급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오경이 모세에 의해 저작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사실 많은 저자들에 의해 편집된 책이라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에 계시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피노자는 성서가 다른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오류와 모순으로 가득찬 책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당시 커다란 저항과 비판을 불러왔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그의 이성적인 시각은 후대의 성서학자들에게 받아들여져 근대 성서 비평학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성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학자가 18세기에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요한 필립 가블러이다. 가블러의 시대인 18세기 때까지도 유럽의 신학교에는 성서학이라는 과목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대성서는 교의학의 틀 안에서 다루어졌다. 이 말은 성서에 대한 이해를 성서 자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교리적인 공식의 틀에서 성서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종의 연역적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의 발현 이후 사람들은 연역적인 추론보다는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핵심 진리에 다가가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연역적인 추론 방법에서는 기본 명제가 100% 옳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현실상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이런 선입견이 우리 각자의 경험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블러는 성서학을 교의학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제의 강연을 하게 된다. 1787년 3월 30일에 그가 했던 이 강연의 제목은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의 적절한 구분과 각 신학의 특정한 목표에 관하여(On the Proper Distinction Between Biblical and Dogmatic Theology and the Specific Objectives of Each)” 이다. 아래의 강연 일부 내용을 보라.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기독교의 근간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종교적인] 논란은 종교와 신학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논란은 성서 신학의 단순함/용이성과 교의 신학의 복잡성/어려움을 부적절하게 한데 묶은데서 야기되는 것입니다.”
즉, 성서는 하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성서 해석에 대한 논란들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 기독교 공동체가 분열되는 이유는 교리가 전제된 성서 해석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서의 언급들도 복잡한 교리 때문에 엇갈린 해석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 가블러의 문제제기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교리적인 지식이 성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선입견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블러는 또한 성서가 가지고 있는 해석상의 어려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첫째로 이러한 책들에서 전승되는 내용들의 본질과 성격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체적인 표현 방식과 개별 어휘들의 특이성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전의 시대의 사고방식과 관습이 우리 시대와는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고, 넷째로 고대 문헌의 성격이든, 각 저자가 사용하는 특이한 언어 때문이든 이 책들을 해석하는 적절한 방법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가블러가 이 대목에서 강조하는 것은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고유한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들이 성서를 해석할 때 잘못된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종교”와 “신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성서의 교리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모든 기독교인들이 알고 믿어야할 것과 현재의 삶과 다가올 삶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일상적이고 분명한 지식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섬세하고 훈련된 지식이며 다양한 학문들의 요소들과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은 단지 성서 자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의 영역에서도 비롯된 것입니다.”
즉, 온전한 “성서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성서 내에 교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다양한 학문 분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서 본문이 내포하고 있는 시대 배경과 언어, 그리고 역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성서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블러는 이런 측면에서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아래와 같이 구분합니다.
“성서 신학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종교적인 문제에 관해 성서의 저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관심을 갖는 반면, 교의 신학은 교술적인 관점에서 각 신학자들이 각자의 능력이나 시대, 장소 교파, 학파 등의 배경에 따라 종교적인 주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가블러에 따르면 당시까지 사람들은 교의 신학적으로 성서에 접근했는데, 이는 성서 텍스트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성서 텍스트에 관한 신학자들의 교리적인 견해”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는 성서 본문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시대 혹은 교파에 따라 교리적인 견해는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와 차이가 성서 해석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결과 성서는 하나이지만 매우 상이한 해석들이 난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가블러는 아래와 같이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나눈 방법론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주의 깊게 인간으로부터 신을 구별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서 본문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언급하는 내용들과 하나님께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말씀해 주신 내용을 구별한 이후에 종교에 대한 우리의 철학의 기초를 세우고 세심하게 하나님과 인간 지혜의 목적을 표현해 내어야 합니다.”
가블러는 역사적인 관점을 갖고 성서 본문의 시대에만 통용되는 메시지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메시지를 구별해 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서 본문과 관계된 언어적이고 역사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히브리어로 표현된 구약과 그리스어로 표현된 신약의 사고 방식과 종교관은 각기 다르게 접근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세하게는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신약의 복음서 저자들과 바울의 저술은 개인들의 환경과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블러는 특히 언어적인 이해와 관련하여 특정한 단어의 의미만을 파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왜 그 단어가 저자들에 의해서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그 단어들의 의미가 어떻게 확장되어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테면 여자들은 교회에서 두건을 써야 한다는 바울의 규정이라던지 모세의 제의를 현재 교회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인지, 인간적인 동기에서 나온 말”인지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블러는 성서학이라는 독립적인 학문을 창안했던 동시에 전근대적인 교의적 성서 해석 방식과 근대적인 역사적이고 언어적인 성서 해석 방식을 이론적으로 체계적으로 구별해 내었다.
이후 이렇게 새롭게 구별된 성서학의 방향성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의 근대적이고 비평적인 해석 방식은 다음 논의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 볼 것이다.
인문주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을 거쳐,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물결 속에서 성서는 더이상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신성한 책이 아니라 이성의 눈으로 분석될 수 있는 책이라고 여겨지게 되었음을 우리는 살펴 보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또한 비평적으로 성서에 접근하는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참고 (수업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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