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들이 이 땅에 번성할(רבב)수록 사람들의 죄악이 커짐을 보시고, 사람들을 지은 것을 후회하셨다(וינחם). 여기서 “후회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נחם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טוב)라는 언급과 상반된다. 즉, 이 세상의 죄악이 너무나도 커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결국은 이 일을 후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래의 표와 같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창6:7에서 저자는 1장의 창조 이야기의 어휘들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사람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이 “창조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의 죄 때문에 짐승들 마저 멸절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죄의 결과와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죄악의 결과 홍수가 세상을 덮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동물들을 남겨 두셨다. 홍수가 끝난 후, 하나님께서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다시 명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פרו ורבו 8:17; 9:1) 즉, 홍수는 세상을 멸하는 것인 동시에, 새로운 창조 세계를 여는 것이었다. 8:21에서 하나님은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를 참으시고 이들에게 기회를 주실 것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용인하지 않으시는 죄는 바로 “피를 흘리는 것”(9:6)이다. 특히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בצלם אלהים עשה אדם). 여기서 다시 창조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해 나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창조 질서를 지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인간은 과연 생육하고 번성하였는가?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레27:9).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했고, 앗시리아와 바빌론에게 멸망 당했다. 남유다가 멸망당할 때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 그리고 포로기 시대 때 활동했던 에스겔 선지자는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렘3: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렘23:3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겔36:11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위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창1:28에 나와 있는 רבה פרה의 표현이다. 비록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새로운 창조를 통해 그의 백성을 번성하고 생육하게 하실 것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실패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한탄하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의 심판이 아니라, 기다림과 인내로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고 계신다.
인간은 이 세상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지켜나가야 한다. 죄없고 힘없는 자들이 불의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피흘리는 현실은 하나님의 마음을 후회하게 하고 한탄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연약한 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이들을 보호하는 용기를 가진 자가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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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본문에서 “짓다”, “만들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모두 עשה로 본래 동일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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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지은 창조물 가운데 6장에서 멸절의 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물고기이다. 물고기들은 본래 물에서 살기 때문에 홍수가 난다 할지라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즉, 불이 아닌 물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생명 전체를 말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셨기 때문에 노아가 살아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심판의 도구는 불로 표현되는데, 이는 생명을 남김없이 멸절하는 철저한 심판으로 물의 심판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