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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학의 아버지 - 가블러

Created
2022/02/2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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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필립 가블러

(4 June 1753 – 17 February 1826)
가블러는 근대적인 성서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성서학의 개념은 기존의 교리적인 틀에 구속되어 있던 성서를 있는 그대로, 혹은 성서가 쓰여진 역사적 틀이나 배경에서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블러의 시대 때까지도 유럽의 신학교에는 성서학이라는 과목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 때 성서는 교의학의 틀 안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이 말은 성서에 대한 이해를 성서 자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교리적인 공식의 틀에서 성서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종의 연역적 방법론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의 발현 이후 사람들은 연역적인 추론보다는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핵심 진리에 다가가는 노력을 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연역적인 추론 방법에서는 기본 명제가 100% 옳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현실상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이런 선입견이 우리 각자의 경험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블러는 성서학을 교의학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제의 강연을 하게 됩니다. 1787년 3월 30일에 그가 했던 이 강연의 제목은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의 적절한 구분과 각 신학의 특정한 목표에 관하여(On the Proper Distinction Between Biblical and Dogmatic Theology and the Specific Objectives of Each)” 입니다.
그의 강연문 가운데 주요 부분들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기독교의 근간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종교적인] 논란은 종교와 신학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논란은 성서 신학의 단순함/용이성과 교의 신학의 복잡성/어려움을 부적절하게 한데 묶은데서 야기되는 것입니다.”
즉, 성서는 하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성서 해석에 대한 논란들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 기독교 공동체가 분열되는 이유는 교리가 전제된 성서 해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서의 언급들도 복잡한 교리 때문에 엇갈린 해석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 가블러의 문제제기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교리적인 지식이 성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선입견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블러는 또한 성서가 가지고 있는 해석상의 어려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로 이러한 책들에서 전승되는 내용들의 본질과 성격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체적인 표현 방식과 개별 어휘들의 특이성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전의 시대의 사고방식과 관습이 우리 시대와는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고, 넷째로 고대 문헌의 성격이든, 각 저자가 사용하는 특이한 언어 때문이든 이 책들을 해석하는 적절한 방법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가블러가 이 대목에서 강조하는 것은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고유한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성서를 해석할 때 잘못된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종교”와 “신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성서의 교리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모든 기독교인들이 알고 믿어야할 것과 현재의 삶과 다가올 삶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는 일상적이고 분명한 지식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섬세하고 훈련된 지식이며 다양한 학문들의 요소들과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은 단지 성서 자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의 영역에서도 비롯된 것입니다.”
즉, 온전한 “성서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성서 내에 교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다양한 학문 분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서 본문이 내포하고 있는 시대 배경과 언어, 그리고 역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성서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블러는 이런 측면에서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아래와 같이 구분합니다.
“성서 신학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종교적인 문제에 관해 성서의 저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관심을 갖는 반면, 교의 신학은 교술적인 관점에서 각 신학자들이 각자의 능력이나 시대, 장소 교파, 학파 등의 배경에 따라 종교적인 주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가블러에 따르면 당시까지 사람들은 교의 신학적으로 성서에 접근했는데, 이는 성서 텍스트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성서 텍스트에 관한 신학자들의 교리적인 견해”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서 본문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시대 혹은 교파에 따라 교리적인 견해는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와 차이가 성서 해석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 성서는 하나이지만 매우 상이한 해석들이 난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가블러는 아래와 같이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나눈 방법론을 적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주의 깊게 인간으로부터 신을 구별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서 본문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언급하는 내용들과 하나님께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말씀해 주신 내용을 구별한 이후에 종교에 대한 우리의 철학의 기초를 세우고 세심하게 하나님과 인간 지혜의 목적을 표현해 내어야 합니다.”
가블러는 역사적인 관점을 갖고 성서 본문의 시대에만 통용되는 메시지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메시지를 구별해 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성서 본문과 관계된 언어적이고 역사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히브리어로 표현된 구약과 그리스어로 표현된 신약의 사고 방식과 종교관은 각기 다르게 접근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세하게는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신약의 복음서 저자들과 바울의 저술은 개인들의 환경과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블러는 특히 언어적인 이해와 관련하여 특정한 단어의 의미만을 파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왜 그 단어가 저자들에 의해서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그 단어들의 의미가 어떻게 확장되어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테면 여자들은 교회에서 두건을 써야 한다는 바울의 규정이라던지 모세의 제의를 현재 교회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인지, 인간적인 동기에서 나온 말”인지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에 발표한 이 가블러의 강의는 지금 여전히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내에서 성서의 근본 메시지를 탐구하고 전달해 주기보다는 설교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성서 해석이 왜곡되는 것은 아닐까요? 성서학의 시작은 성서를 인간의 책으로 폄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외적인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일러두기
최초 작성일: 2019. 5. 28.
최초 작성 및 유지: 김경식 (kung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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