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바로 “팔복”의 말씀이었습니니다. “팔복”은 여덟가지 복에 대한 말씀을 가르키고 있는데, 흔히 우리가 “복”이라고 하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게 되는 의미와 예수님의 “복”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역을 시작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형식화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집중하는 잘못된 종교적인 모습을 부정하시고, 정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무엇인가를 전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말씀이 바로 팔복의 말씀입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보면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율법 지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면서, 자신들만큼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였습니다. 즉, 자신들의 종교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과시하면서 종교적인 의로움을 드러내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들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6: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위와 같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상기시킵니다. 위 구절에서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을 비판하고, 그러한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오직 마음이 가난한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들이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겸손한 자들만을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의로움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 세상을 바라보며 애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부조리와 잘못된 모습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물질적인 풍부함으로 넘쳐나서 평화로워 보인다 할지라도, 그 풍요로움이 불의와 부정, 그리고 약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의와 반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위 이사야의 말씀은 당시 무너져 가는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입니다. 왕국 말기 예루살렘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피폐해져 가던 가운데 있었습니다. 거대한 성전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형식적인 종교 행위만 행해지던 때였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당시의 종교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반하는 것으로 비추어졌고, 당연히 애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이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될 때,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팔복의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없어 보이는 모습에만 막연히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내면의 문제를 깨닫고 애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을 것이라 예수님의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세 번째 팔복의 말씀은 경제적인 부분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온유한 자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소유를 무리하게 늘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좀 다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성경 시편 37편에 근거한 것 같습니다.
시편 37편
1-2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 9-11절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의 저자는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 언젠가는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소유를 얻게 된 사람들에 대한 경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으로 두는 사람들, 그리고 소유에 대한 무리한 집착을 하지 않는 자들이 도리어 땅을 차지하게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