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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창조 이야기? – 하나님의 이름들

Created
2022/10/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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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스트룩(Jean Astruc)은 1753년 그의 유명한 저서, Conjectures sur les mémoires originaux dont il paroit que Moy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èse를 출판한다. 이 긴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면 “모세 자신이 창세기를 저작할 때 사용했던 본래의 기억들에 대한 추측” 정도가 된다. 아스트룩의 저서가 성서학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그가 최초로 성서가 두 개 이상의 자료(source)로 구성되었음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창세기를 두 개의 자료로 나누었고, 실제로 어떻게 나누어지는가를 제시했는데, 그의 이러한 방법론은 자료 비평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1]
그는 특히 책의 30페이지에서 첫번째 자료의 창조 이야기가 2:3에서 끝나고, 두번째 자료의 창조 이야기가 2:4에서 시작한다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현재까지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구분이다.[2]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구분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구 개의 창조 이야기, 나아가 오경의 자료들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필자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성서가 다양한 전통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 이상의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방법론을 너무 무리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적용한 나머지 과도하게 성서 본문을 나누었고, 분리해 왔다는 것이다. 이 결과 통전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성서 본문이 무리하게 잘라져버려 성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아스트룩이 성서자료를 나누면서 주목한 부분은 바로 첫번째 창조 이야기와 두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앨로힘(אלהים), 그리고 두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는 YHWH(יהוה)로 나타난다.[3] 엄밀히 말하면, 창2:4에서는 יהוה가 아니라 יהוה אלהים으로 표시된다. 아무튼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왜 이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그러나 출애굽기 6:3을 보면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될 것이다.
וָאֵרָא אֶל־אַבְרָהָם אֶל־יִצְחָק וְאֶל־יַעֲקֹב בְּאֵל שַׁדָּי וּשְׁמִי יְהוָה לֹא נוֹדַעְתִּי לָ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개역개정)
창세기를 계속해서 읽다보면 믿음의 조상들이 יהוה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언급이 있다(12:8; 13:4; 15:7; 28:13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6:3과 같은 언급이 있다는 것은 창세기를 구성하고 있는 자료가 복수임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자료 가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J (혹은 Non-P) 자료가 창조 이야기부터 일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יהוה라고 언급하고 있는 반면, P 자료에는 출애굽기 6장이전에 하나님은 오직 앨로힘(אלהים) 내지 앨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אל שדי)라고 언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4]  물론 최근의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자료나 문서층을 구분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이 되지 못함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은 중요한 구분점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다.
그러나 필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료나 층을 구분할 수 없다고 보며, 이러한 차원에서 출애굽기 6:3 역시 새롭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אלהים과 יהוה가 갖고 있는 의미의 차이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한글 번역에서 אלהים은 ‘하나님’으로 יהוה ‘여호와’로 표시된다. 물론 ‘여호와’라는 표기는 정확한 독법은 아니고 임시방편의 표기일 뿐이다. 아무튼 두 이름이 가진 차이는 אלהים은 일반적으로 신을 부르는 칭호라고 한다면 יהוה는 하나님이 가진 고유한 이름이다. אלהים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때로 이방 신들을 언급하기도 한다.[5] 그리고 단수형태인 앨(אל) 혹은 앨로하(אלוה)로 표시되기도 한다. 이 역시 이방신과 하나님을 언급하는 말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יהוה는 오직 하나님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위 두 이름 외에도 성서에서는 다양한 하나님의 호칭이 존재한다: 앨 샤다이(אל שדי 전능하신 하나님), YHWH 쯔바옷(יהוה צבאות 만군의 여호와), 앨 앨리욘(אל עליון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등. 중세 유대 주석가 람밤(Rambam  1138-1204)은 YHWH를 제외한 이러한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들은 인간이 역사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모습을 고백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어떤 이에게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어떤 이에게는 높은 존재인 하나님 등으로 인식되고, 그것을 그대로 고백했다는 것이다. 현대 주석가 카수토(U. Cassuto) 역시 이런 비슷한 맥락에서 אל שדי와 יהוה를 구분하며 출애굽기 6:3을 다시 해석한다. אל שדי 즉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자손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주로 나타난다(창17:1-2; 23:3). 반면 יהוה 는 가나안 땅 점유에 관한 약속의 성취와 관련해서 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대 주석가 카수토(U. Cassuto) 역시 이런 비슷한 맥락에서 אל שדי와 יהוה를 구분하며 출애굽기 6:3을 다시 해석한다. אל שדי 즉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자손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주로 나타난다(창17:1-2; 23:3). 반면 יהוה 는 가나안 땅 점유에 관한 약속의 성취와 관련해서 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땅 점유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모세의 때가 되어서야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6] 따라서 이러한 약속의 성취가 눈에 보이지 않던 족장 시대에는 족장들이 יהוה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어도 그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모세의 때가 되어서야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모세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으로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יהוה와 그 외의 다른 이름들이 위와 같이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카수토의 견해는 오경 전체에는 적용되기 힘든 점이 있다. 예를 들면, 땅에 대한 약속이 언급되기 훨씬 전, 에노스 시대 때, 사람들이 יהוה의 이름을 불렀던 것은(4:26) 위의 견해로 설명되지 않는다.
יהוה의 이름의 의미는 오랫동안 연구 대상이었지만 그 답을 찾을 수는 없다.[7] 대신 필자는 יהוה가 의미하는 바와 출애굽기 6:3의 의미는 이 구절을 기점으로 하여 나타나는 전체적인 신학적/문학적 변화 과정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출애굽기 6:3이후, 모세의 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신학적 변화 과정이 있다. 그것은 “유일신 신앙의 탄생”이다.[8] 물론, 이는 모세 이전에도 존재하셨던 한 분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한 분 하나님을 믿음의 조상들이 정확히 인지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는 출애굽기 6:3에 암시되어 있다. 이 구절의 동사  נודעתי לה 는 수동태 동사이다. 직역하면 “내가 알려지지 않았다”이다. 즉, 족장들이 하나님을 이 세상의 한 분밖에 없으신 유일신 YHWH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출애굽을 한 이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율법을 수여받는다. 율법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강조는 그 유명한 셰마 이스라엘(신6:4) 구절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모세 이전의 족장 이야기들을 보면 이러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창세기 15장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곳을 베델이라 이름 짓는다. 이러면서 그는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제사를 지낸다. 이는 주상(standing stone)으로 가나안의 전형적인 종교 풍습이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 때  종교 개혁을 단행하면서 이러한 주상들을 파괴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리고 야곱과 라헬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 라헬은 우상이었던 드라빔을 몰래 훔쳐온다. 그러나 성서는 이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하지 않는다. 즉, 다신론적인 환경이 도처에 암시되어 있다. 족장들은 물론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지만, 당시 그들의 사고 방식은 하나님은 많은 신들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יהוה보다도 더 자주 אלהים이나 אל로 더욱 많이 언급된다. 즉, 족장들은 יהוה의 이름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유일신 하나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의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אלהים이 한 분 하나님으로 인식하게끔 인도한다. 창조 이야기의 첫 머리에 보통 명사 앨로힘(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바로 뒤에 앨로힘으로 언급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임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4에 יהוה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데 אלהים과 나란이 언급되어, יהוה אלהים이라고 표현된다. 앞에서 언급된 일반명사 앨로힘의 고유한 이름은 יהוה라고 처음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다음과 같은 도식이 완성된다:
한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 그 하나님은 “여호화” 하나님이다. –>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에노스 시대 때 부터 인식되어 불리워 졌다. –>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셨지만 족장들은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 모세 때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 여호와를 다시 드러내셨고, 이 이름이 의미하는 엄격한 유일신 신앙을 율법을 통해 규정하셨다.
이는 성서에서 문학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간단한 단어 통계를 내보면 보다 확실하게 그 변화를 볼 수 있다. 아래의 두 그림은 각각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단어 구름(word cloud)이다. 글자 크기가 크면 클 수록 빈도수가 높은 단어를 의미한다.[9]
창세기
출애굽기
창세기에서 אלהים과 יהוה의 글자 크기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두 이름이 유사한 빈도수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 יהוה는 현저히 크게 나타난다. 즉, 유일신 하나님 신앙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 후에는 이를 반영하는 하나님의 이름 יהוה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주된 명칭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본 글에서 짧게나마 하나님의 신명이 함축하는 바를 논의해 보았다. 물론 이는 필자가 성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제안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결국 성서 자료가 신명을 기준으로 하여 나누어질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창조 이야기 역시 신명에 따라 2개의 이야기로 구분될 수 없다고 본다.
(계속)
[1] 이 저서는 다음의 Url을 통해 볼 수 있다. https://archive.org/stream/conjecturessurl00astrgoog#page/n46/mode/2up
[2] 보다 일반적으로는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2:4 상반절에서 끝나고,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2:4 하반절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3] יהוה는 읽을 수 없는 신성 4문자이다(Tetragrammaton). 이 글자에는 모음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독법은 알 수 없다. 히브리 성서에는 이 단어에 모음이 붙어있긴 한데, 본래 모음이 아니라 앨로힘(אֱלֹהִים)과 아도나이(אֲדֹנָי)의 모음을 차용해서 붙인 것이다. 따라서 히브리 성서에서 이 글자가 나오면 주님을 의미하는 ‘아도나이’ 내지는 신명기 전통을 따라 ‘하솀'(השם 그 이름)으로 읽는다. 유대인들은 후자의 독법을 선호한다.
[4] J는 야웨 신명(Jahweh)을 사용하는 자료라고 해서 붙은 명칭이고, P는 이 자료에 해당하는 부분이 제사적인 측면을(Priestly) 강조하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5] 앨로힘이 하나님을 언급할 때에는 단수 취급되지만, 이방신들을 표시할 때에는 복수 취급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선 글 “앨로힘은 신들?”을 참조하라.
[6] Umberto Cassuto, A Commentary on the Book of Exodus, (Jerusalem: The Magnes Press, 1967), 78-79.
[7] 유대주의적인 관점에서 יהוה의 의미를 탐구한 간략한 에세이는 다음의 Url을 참조하라.http://thetorah.com/yhwh-the-god-that-is-vs-the-god-that-becomes/
[8] 예를 들면, N. Sarna 역시 모세 시대 이후에 “유일신 종교”가 태동했다고 본다. Nahum Sarna, Exploring Exodus, (New York: Schoken Books, 1987), 52.
[9] 위 데이터 통계는 필자가 제작한 성서 단어 통계 프로그램을 통해 도출된 결과이다. (http://kimsbible.com/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