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뤽 이후 독일 학계를 중심으로 창세기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러한 “자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관심의 초점을 두게 된다. 이후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신명에 따라 하나님(Elohim)을 사용하는 문서를 E문서, 그리고 야웨(Jahweh)라는 신명을 사용하는 문서를 J문서라고 명명하여 구분했다.[1]
이러한 가운데 소위 4문서설의 기초를 확립한 학자는 헤르만 훕펠트(Hermann Hupfeld)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최종적으로 E를 하나로 보았지만 E (Elohistic) 문서가 본래 두 자료들(sources), 즉 오래된 E(Priestly, 종교적인 법들)와 늦은 E(Elohist, J와 대응하는 네러티브)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늦은 E는 완전한 내러티브가 아니고(아브라함 중간에서부터 시작), 오래된 E를 보완하기 위한 개념. 그리고 그는 오경의 근간을 종교적인 법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J와 E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드러냄으로 E와 J는 두 다른 전통을 보존하려고 했던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결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료들의 연대기는 다음과 같다. E1E2JD (PEJD)
Hermann Hupfeld (31 March 1796~24 April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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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 (엘로힘 신명, 종교적인 법들/내러티브, 오경의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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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 (엘로힘 신명, E1을 보완하는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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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야훼 신명, 내러티브(E와는 독립적으로 형성))(이후 E1-E2-J 편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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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신명기)
그리고 그는 오래된 E와 늦은 E를 별개의 문서로 보았고, 훕펠트가 제안했던 자료의 연대기를 뒤집어서 JEDP라는 20세기 동안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졌던 4문서설의 모델을 제안했던 학파는 Graf-Wellhausen 학파이다. 이들이 주장한 이론은 벨하우젠의 저서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Julius Wellhausen (17 May 1844~7 January 1918)
이들이 당시 성서학계에 영향을 끼쳤던 중요한 방법론적인 견해는 바로 종교사학적인 관점에서 오경을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이 관점은 19세기 당시 낭만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다. 낭만주의 사조는 이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며, 인간의 삶 역시, 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의해 변화해 나간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즉, 글로 쓰여진 텍스트 이면에는 당대의 역사적인 정황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이야기에 현재의 상황이 투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텍스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원래 본문”은 어떤 형태였으며, 이 원래 본문을 포함하고 있었던 더 큰 맥락의 본문은 무엇이었으며, 왜 이 텍스트는 변형되었는가?
이전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법”이 보다 고대적인 것이고 이와 관련된 “네러티브”가 보다 후대의 문서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벨하우젠은 이를 다르게 보았다.
그가 그의 방법론을 내세움에 있어 중요한 모델이 되는 문헌은 바로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였다. 이스라엘의 왕정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두 “역사책”이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열왕기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혹은 지역적인 성소에서의 제사를 반영하고 있는 반면에 역대기서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제사를 강조하고 있다.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의 분기점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은 바로 바벨론 포로기이다. 벨하우젠은 바로 바벨론 포로기가 진정한 의미의 유일신 신학이 정립된 시기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각종 제사법과 중앙 성소(성막으로 표상되어 있는)를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 제사장 문서(P)는 포로기 동안 혹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이야기한다.
벨하우젠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종교사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초기 이스라엘은 다른 가나안 국가들과 크게 차별되지 않은 다분히 미신적이고 다신교의 영향을 받은 사회였으나 예언자 시대와 신명기 종교개혁 시대를(히스기야, 요시야) 거치고 나서야 유일신 종교화가 이루어져갔고 온전한 유일신 신앙은 포로기 이후에야 정립 되었다고 보고 있다(*그는 또한 성막 역시 역사적 실재가 아닌 이상적인인 종교 공동체(church)의 표상이라고 보았음). 즉, 그는 미신적인 종교에서 토라법을 중심으로하는 법적이고 윤리적인 종교로의 발전(evolution)을 주장했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유일신 종교의 핵심적 경전인 토라 율법을 형성한 이들은 예언자들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구조는 당시 독일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헤겔의 정/반/합의 역사 구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벨하우젠 스스로는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벨하우젠은 중앙 성소에서만 이루어지는 종교 의례는 현실적이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이는 유대교 출신 학자들에게 반유대주의적인 성향으로 비춰지기도 했다.[2] 아무튼 그가 주장한 4문서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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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야훼 신명, 내러티브, 10세기(남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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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엘로힘 문서, 훕펠트의 E2, 8세기(북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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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신명기, 7세기(요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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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제사장 문서, 훕펠트의 E1, 6세기(포로기))
JE는 종교적인 색채가 다소 약하고 자연스러운 역사를 서술하려는 경향 D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반영하고 있음. 그리고 성서 역사 서술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문서. 유일신 신앙이 훨씬 더 부각됨. P는 법이 종교생활의 바탕이 되었던 포로기 이후의 시대 상황을 반영 이름(족보)과 숫자 목록 등의 건조한 방식의 기록 형식은 포로기 이후의 문헌들(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과 유사함. P문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세속적인 민족이 아닌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받는 신앙 공동체(church). D는 유일신 신앙을 갖춰야 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P는 유일신 신앙을 이미 전제하고 있음. 따라서 P가 토라의 마지막 자료이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점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시작점에 완성된 것. 그리고 P는 예언자 전통에 근거하여 형성된 것
이에 대한 반발로 이스라엘 식 문서설을 주장한 이는 카우프만(Yehezkel Kaufmann)이었다. 그는 벨하우젠의 점진적인 종교 진화(evolution) 이론에 반대하고 있으며, P자료로 분류되는 이스라엘 성전 제의가 허구가 아니며, 이스라엘에서 실제 행해졌던 종교 의례를 반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벨하우젠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일신 사상은 다신교적인 사상에서 발전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세의 때로부터 시작된 전적으로 이스라엘만의 독특하고 혁명적인(revolution) 신앙이라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독일계열 학자들의 문서 모델을 수정하여 JEPD를 주장했다. 후에 이스라엘 계열 학자들은(Polzin) P가 갖고 있는 오래된 언어적인 특성을 주장함으로 이 이론을 뒷받침하려고 했다.
그는 토라가 예언서 보다 앞선다고 보았고, 예언자들은 토라의 설교자이자 해석자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의 진화는 그 예가 없으며 불가능한 것이라 지적했다. 그리고 P는 중앙화에 대한 문자적인 강조가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P가 신명기 이전임을 함축하는 것이라 보았다(*벨하우젠은 중앙화에 대한 P의 침묵은 이를 당연시했기 때문이라 언급한다). 그는 성막과 종교법(P)이 일찍부터 이스라엘 신앙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J-E-P-D를 단선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전통들이 각자 다른 전통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했다고 보았다. 특별히 P가 다른 문서들과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제사장 집단이 그만큼 폐쇄적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보고 있다.
Yehezkel Kaufmann (1889 – 9 October 1963)
창세기 12장, 20장, 그리고 26장에는 남편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그 지역의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한 이야기 패턴이 등장하고 있다. 이 반복되는 이야기 형태는 성서의 형성과 관련하여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 반복되는 이야기 패턴과 관련하여 중요한 방법론적인 기준을 제시한 학자가 바로 헤르만 궁켈(Herrman Gunkel)이다. 헤르만 궁켈이 주목했던 부분은 “구전 전승”이다. 이는 앞서 4문서설 이론을 주장했던 벨하우젠이 “문서 단계”에 초점을 둔 것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궁켈은 기본적으로 당대의 주도적인 성서 형성 이론이었던 4문서설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는 성서의 문서 생성 이전의 “구전단계”에서의 성서 형성사에 초점을 두었다.
당시 독일 내에서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그 이야기들의 장르를 분류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즉, 문학 형태에 따라 각기 고유한 장르를 구별하고, 그 장르의 특성에 따라 문학이나 이야기에 접근했던 방법론이 고안되고 적용되었다.
헤르만 궁켈, 1862년 ~ 1932년
궁켈 역시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문학의 형식과 패턴을 구분하고 그 형식으로 기준으로 본문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문학 방법론을 성서 본문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방법론은 양식비평(Form Criticism, Formgeschichte)라고 불린다. 이전의 문서설 내지 비평 방법론들이 일차적으로 그 내용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면 궁켈은 이야기의 형식 자체와, 바로 이 형식을 통해 파악될 수 있는 문서의 기능과 역사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오래된 글이 있는데, 이 글의 문두에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인사말이 따르고, 본론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별의 인사말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글의 형식은 무엇일까? 이 글의 형식은 “편지”라고 규정된다. 그러면 “편지”라는 형식의 기능, 즉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안부나 소식을 전하기 위한 기능을 갖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일차적으로 외적인 형식이 파악되었으니 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편지라는 형식은 다소 “정형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고, 세부적인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다를 수 있다. 즉, 고대의 서신과, 옛 편지글, 그리고 이메일의 형식과 내용이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각각의 서신들이 고유한 문서 형태로 발견된다면 이를 구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성서 내에는 이미 같은 두루마리에 같은 필체로 통합되어 있다는데에 그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적인 형식과 특징을 잘 파악하여 구별할 필요가 있다.
위 두 문서는 모두 “편지글”의 양식(form)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형식과 내용이 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궁켈의 방법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형식이 본래 “구전단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인류 초기의 이야기 전달방식은 문서가 아니라 구전이었으며, 구전의 특성상 그 형식과 내용은 시대적인 배경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궁켈의 관점이었다. 당시 종교사학파의 리더였던 그가 창세기를 양식비평적으로 접근하면서 밝혀내고자 했던 것은 양식의 분석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라 “성서 본문의 역사”에 있었다.
위의 두 예를 살펴보면 형식은 동일한 듯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형식이 나타난다. 우리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듯이 위의 편지글은 보다 이전 시대의 형식을, 그리고 아래의 편지글은 이메일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파악함으로 두 편지글의 시대적인 순이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의 글은 제일극장을, 그리고 아래의 글은 넷플릭스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편지글에 언급된 사람들이 살았던 보다 구체적인 삶의 정황을 보여준다. 이를 궁켈은 삶의 자리(Sitz im Leben)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니까 궁켈의 방법론은 “형식의 관찰과 분류” ⇒ “동일한 형식의 본문 비교” ⇒ “삶의 자리”와 “본문의 역사” 파악 등의 절차로 이루어진다.
이를 wife-sister 모티프에 적용해 보자. 각 이야기는 동일한 이야기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동일하지 않다. 궁켈의 방법론을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여기서 각 본문의 시대적인 순서를 추정할 수 있다. 궁켈은 기본적으로 창세기 전체를 “설화” (Sage)의 틀로 보았다. 즉,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실제의 역사 정황을 설화적, 혹은 신화적으로 표현한 이야기라는 것이다(예. 단군, 호랑이, 곰 이야기). 설화적인 표현방식은 고대 사람들이 당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야곱이 벧엘에서 돌배게를 베고 자다가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고 돌을 세우고 제사했던 것은 벧엘에 존재했던 성소의 유래를 진술하는 설화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는 그 특색을 잃어가고 점차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의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궁켈의 분류 방식에 따르면 창세기 12장, 20장, 26장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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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0-20(J1) - 매우 완결된 이야기(민담)의 형식. 사라와 파라오의 성적인 관계가 암시(15절 לקח 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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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18(E) - 보다 종교적인 요소가 추가됨. 사라와 파라오의 관계가 완만하게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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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6-11(J2) - 이야기의 성격을 거의 상실. 리브가와 아비멜렉의 관계가 완전히 배제되고 있음.
궁켈에 따르면 위 이야기들의 시대적인 순서는 J1 —> E —> J2가 된다. 여기서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은 궁켈은 문서 이전의 단계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궁켈과 벨하우젠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도식으로 이해된다.
즉 이와 같이, 궁켈은 당시 도그마와 같았던 벨하우젠의 4문서설의 틀 안에서 자신의 이론을 제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궁켈의 방법론은 훗날 4문서설을 반박하는 이론의 배경이 되었다. 왜냐하면 궁켈은 구전단계와 문서단계를 구별하기는 했지만, 후대의 학자들에게 있어 통전적인 J문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J문서의 저자를 규정하는 방식도 달랐다. 벨하우젠은 J를 역사가로 보았지만, 궁켈은 J를 이야기의 수집가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초기 비평적인 접근 방식은 어떠한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다.
이러한 궁켈의 접근 방식은 시편과 예언서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시편과 예언서는 ‘정형화’된 형식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궁켈의 양식비평적 연구 방법론은 창세기와 같은 산문 뿐만 아니라 시편과 예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운문’의 장르와 형식을 구분하는 데에도 중요하게 활용되기도 하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비평적 예언서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는 Bernhard Duhm이다. 그는 벨하우젠의 이론에 기초하여 예언서 또한 이스라엘의 종교사적인 발전상 가운데에서 여러 단계에 걸친 편집을 주장하였다. 그는 양식사적 연구 방법론을 궁켈만큼 체계적으로 정립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방법론과 유사한 관점에서 형식에 따라 예언서를 구분하였다.
그는 예언이 본래 운문의 형식으로 선포 되었음을 가정하며 운문으로 되어 있는 형식은 예언자 본인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산문의 형식으로 된 본문은 이차적인 편집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예언서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이사야 본문이 3개의 다른 시대의 저자를 반영하고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본문의 내용에 따라 아래와 같이 이사야서의 구조를 3개로 나누어 제시하는데 이러한 구분 방식은 오늘날까지 인정되기도 한다.
Bernhard Lauardus Duhm (1847-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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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이사야(Isaiah 1-39장): 전통적으로 이사야가 기록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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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이사야(Isaiah 40-55장): 포로기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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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이사야(Isaiah 56-66장): 후기 편집자로 본 인물.









